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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의 진화와 방송
한국VR산업협회 교육사업특별위원장, 서강대학교 MTEC 교수 김홍석
2016.10.2
1492년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해 출항했고, 1990년대 인터넷 신대륙을 향해 수없이 많은 개발자들이 매진하였듯이 지금 전세계는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대륙의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Virtual Reality(VR)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프랑스의 극작가이며 시인이자 연출가인 앙토넹 아르토의 저서 잔혹연극론(1932)에서 찾기도 하고, 1987년에 예술가이자 과학자인 재런 래니어가 처음으로 그 개념을 정리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VR의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의 눈은 2개라서 입체감을 느낀다. 연구에 의하면, 평균 6.2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두 눈이 받아들인 2개의 평면 영상을 뇌에서 합쳐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한 눈을 감고 보면 입체감을 느낄 수 없고 뾰족한 두 개의 물체를 서로 만나도록 두 손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가장 널리 알려진 최초의 방식은 빨간 렌즈와 파란 렌즈로 구성된 색안경을 쓰고 각각의 색이 보이지 않게 처리해서 뇌 속에서 입체를 구성하는 “애너그리프”이고, 최근에는 2개의 화면을 동시에 촬영하거나 개발하고 편광 필터를 사용해서 한쪽 안경에는 수직화면을, 다른 쪽 안경에는 수평화면을 보내는 편광 글래스 방식을 사용한다.
1962년에는 최초의 VR 장비라고 할 수 있는 센소라마가 등장했고, 최근 VR 산업의 주축으로 부상한 HMD(Head Mounted Display)는 1968년 유타 대학의 이반 서덜랜드가 최초로 개발했으며, 1977년에는 MIT에서 마치 오늘날의 스트리트뷰를 생각나게 하는 아스펜 인터랙티브 무비 맵을 개발한다.
미항공우주국 NASA는 우주비행사 교육을 위해 VIEW(The Virtual Interface Environment Workstation)을 개발하기도 하고, 1991년에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CAVE(Cave Automatic Environment, 몰입형 투영 디스플레이), 1995년에는 게임콘텐츠 명가 닌텐도에서 버추얼보이라는 장비를 출시하기도 하는 등 VR은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영역이 아니다.
다만,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인들에게 보급되었고, 2013년 8월 저널리스트 노니 드 라 페나가 VR을 활용한 보도물 “LA의 굶주림, Hunger in Los Angeles”을 발표할 때 어안 렌더링과 어안 렌즈 그리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시험 장비를 개발했던 19세 인턴 팔머 럭키가 오큘러스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 회사를 페이스북이 무려 2조4천억의 비용으로 2014년 4월 인수하면서 세계의 관심은 다시 VR로 집중된다.
페이스북이 전세계에 VR 콘텐츠/플랫폼 전쟁을 선포했던 오큘러스 스토어는 올해 3월 일찌감치 포문을 열었으나 오큘러스 터치 등의 입출력 장비의 출시가 늦어지면서 고전하고 있고, 패키지형 게임 콘텐츠의 공급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던 밸브소프트웨어의 스팀 플랫폼과 공존하던 대만 HTC는 바이브 포트라는 별도 스토어 플랫폼으로 진격 중(9월30일 기준 30여개국 서비스 오픈)이다. 10월13일에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4천5백만대 이상 보급된 PS4에 최적화된 플레이스테이션 VR 네트워크가 오픈하면서 VR 콘텐츠/플랫폼의 신대륙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나이엔틱의 포케몬고에 일부 활용된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이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으면서 AR도 광의의 VR에 포함되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두 가지 영역은 다르다.
VR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 속으로 사람의 인식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헤드트래킹(머리의 움직임)과 포지셔널 트래킹(몸의 움직임) 등 유저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영역이고 엔터테인먼트에 치중되어 진행되고 있다면, AR은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를 카메라 등으로 비추면서 그 화면의 좌표값을 분석해 내고 위에 텍스트 혹은 3D 그래픽 등 추가적인 정보 혹은 오브젝트를 합성시켜서 말 그대로 현실을 “증강”시키는 영역이고 산업적, 교육적으로 훨씬 더 집중되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잉은 최초로 AR을 항공기 정비에 도입했으며, 아우디 등 자동차 업계에서도 AR을 설계 및 정비 방면으로 활용한 지 오래되었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구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데, 현실세계의 X, Y, Z축의 값을 인식하여 이에 적합한 3D 그래픽 오브젝트를 어울리게 배치하는 기술인 AR은 기술적으로 더 고난이도였으나 최근 퀄컴의 뷰포리아 툴이 널리 배포되면서 기술적 진입 장벽이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콘텐츠 개발의 창조력이 중요하게 되었다.
AR에 대한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은 구글글래스에서 촉발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은 만화 드래곤볼에서 사용되었던, 상대의 전투력을 숫자로 측정했던 스카우터에서 그 개념을 확인했다. 그리고 실생활 측면에서는 자동차를 후진으로 주차할 때 후방 카메라에 비춰지는 주차구획선 위에 그어지는 가상의 주차선에서 이미 체득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AR기반의 홀로렌즈를 출시하면서 VR의 영역을 접목하였고, Sulun은 아예 HMD에 장착된 카메라를 켜고 끄면서 AR과 VR의 영역을 넘나드는 이른바 MR(Mixed Reality)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VR과 AR, 그리고 MR은 엔터테인분야 뿐 아니라, 교육, 의료, 국방, 여행 등 수많은 분야에서 발전하고 있으며 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방송 분야 역시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MBC는 2015년부터 상암동 MBC 월드 VR 익스피리언스에서 한류를 활용한 액션 VR 드라마와 VR 체험을 제공하고 있고, 10월부터는 kt와 협력하여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500회 특집과 드라마 쇼핑왕 루이 등을 360도 동영상으로 서비스하면서 본격적인 VR방송을 시도하고 있다.
KBS도 기어VR로 보는 뮤직뱅크, 서대문형무소 고문체험관 VR 등을 시작으로 기상캐스터와 함께 걷는 윤중로 봄꽃축제, 송중기와 함께 엘리베이터 타기, 1박2일 VR 등을 서비스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SBS는 미래창조과학부의 가상현실 플래그십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런닝맨, 인기가요, 정글의 법칙 등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VR콘텐츠 제작과 유통 플랫폼 개발을 진행하는 중이다.
360도 동영상은 “가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미 현실을 촬영한 내용이므로 VR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일부의 주장도 있으나, 몰입감과 현장감이라는 VR의 주요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강력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으며 VR 대중산업화의 초기 단계에서 우수 IP와 방송포맷 등을 활용한 360도 동영상은 시장 형성에 기여할 확률이 높다.
여행, 역사 다큐멘터리, 교육 등의 특화된 분야 뿐 아니라 360 동영상 드라마에서의 효과적인 PPL, 이와 관련된 T커머스 등 광고 및 추가 수익 분야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두 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촬영의 방법론과 송출의 이슈일 것이다. 카메라가 한쪽만 바라보는 이제까지의 촬영 작업과는 다르게 현장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는 360도 동영상 방식에서의 촬영은 본질적으로 다른 촬영 방법론을 요구할 수 밖에 없고 다른 방식의 이야기 구조가 전개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방송 broadcasting 시대를 지나 협송 narrowcasting 및 1:1 송출의 개념이 자리잡은 상황에서, 주로 HMD를 활용하는 완벽한 개인 장비인 VR 관련 장비에서는 대용량의 정보를 송출하기 위해서 기존 방송 전파망으로는 한계가 있고, 통신의 영역에서 더욱 더 고도화된 방송통신 융합이 진행되고 있다. “방송”의 시청자가 “1:1” 시청자 상황이 될 때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현재의 인터넷 방송들이 어느 정도 해답을 주고 있으나, 새로운 매체인 VR 환경 하에서 또 어떻게 변화할 지 아직은 정답이 없고 장비 또한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어서 어떠한 장비를 위주로 시청자를 공략해야 할 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이미 인터넷 통신 분야의 강자인 페이스북은 360도 동영상을 도입했고, 이와 병행하여 개인방송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두 가지가 병합된 서비스도 제공한다. 넷플릭스, 디스커버리 등 콘텐츠 강자들의 사업 영역 확장 기세도 거세다.
연예인을 비롯한 방송포맷이라는 우수한 IP를 보유한 방송사들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지 촬영과 송출의 관점에서 고민하면서 VR신대륙을 빠르게 선점해나가야 할 시기라고 판단된다.
* 오프라인 월간지 여의도저널에 2016.10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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