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e스포츠 팬들의 시선은 언제나 대한민국으로 향해 있다. 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그들의 신들린 듯한 게임플레이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기계와 같은 플레이를 펼친다. 한국인들과 붙으면 완전 좌절감이 든다. 왜냐면 그들은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팀은 항상 플랜A, 플랜B, 플랜C를 가지고 있다. 그걸 계속해서 운영하며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대처한다. 그들은 기계다.”
2018년 ‘오버워치’ 월드컵에 출전한 스웨덴과 핀란드 대표 선수들의 한국 플레이어에 대한 평가이다.
또한 영국 출신의 유명 e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쏘린(Thorin)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Thorin’s Thought’을 통해 대한민국 e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해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한국인들은 어떠한 e스포츠 게임도 지배할 것입니다.”
쏘린은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 한국팀이 LOL(리그오브레전드, 롤)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당시에 한국에는 서버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에는 이미 LOL 프로팀들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팀은 데뷔와 함께 2위에 랭크되었다. 팀을 출전 시킨 총 17개의 국제대회에서 12번의 우승과 14번의 결승진출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전세계에서 게임을 제일 잘하는 나라, 세계 최 정상급 e스포츠 팀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맞다. 탑티어(Tip tier) e스포츠 선수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국 e스포츠 선수들은 쏘린의 말처럼 전세계 e스포츠 무대를 지배하고 있다. 전세계 e스포츠 시장에서 한국이 어깨에 힘주며 큰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전설적인 선수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지난해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었다. 비록 출전 과정에 잡음도 많았고 한때 출전 자체가 불투명하여 선수들이 완전한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충격파는 컸다.
전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대한민국 LOL팀은 결승전에서 어이없게 중국에게 패배를 당하게 된다. 대회를 진행하는 사무국의 e스포츠 경기 운영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한국팀이 금메달을 놓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LOL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로 손꼽히는 페이커(Faker, 이상혁) 선수가 끝까지 선전했지만 스코어 1:3으로 완패했다. 결국 오랜 기간 준비해온 중국팀이 한국팀을 압도한 것이다. 이후 ‘2018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도 한국의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팀들인 ‘젠지 e스포츠’, ‘아프리카 프릭스’, ‘Kt 롤스터’가 모두 8강에서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맛보게 된다.
2017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롤드컵에서는 ‘삼성 갤럭시(현 젠지 e스포츠)’와 ‘SK T1’ 두 한국팀의 결승전에서 격돌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한국 선수들은 불과 1년만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당시 이 결과를 접한 국내외의 e스포츠 전문가들은 한국 e스포츠의 위기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 중국의 e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눈으로 직접 본 필자는 중국의 약진을 예상했으며 반대로 한국의 고전을 예상해왔다.
< 2018 오버워치 컨텐더스리그 시즌2 결승전, 서강대학교 체육관 >
독일의 e스포츠 전문 빅데이터 업체인 ‘도조메드니스’ 관계자도 “한국이 e스포츠에서 뛰어난 것은 선수들의 기량뿐이며, 나머지 시스템은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대한민국 e스포츠의 위상은 온전히 선수들에게 의존된 사상누각과도 같다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 e스포츠 선수들의 훈련 방식은 지금까지도 매우 원시적인 형태로 코치나 감독에 의존하거나 선수 간의 끊임 없는 연습만을 통해서 스스로 체득하는 비 효율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게임že스포츠 분야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e스포츠 산업이 그간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정부의 정책적인 후원 없이 부정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어 국민들에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나 연구가 전혀 진행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훌륭한 선수가 된 기존의 선수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할 것이며 새롭게 자라나는 어린 선수들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육성하는데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교육방식을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해외의 경우 전통스포츠가 그렇듯 점점 과학적인 트레이닝 시스템 속에서 철저하게 분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들을 길러낸다.
거대 자본과 함께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중국의 e스포츠 선수들은 연습경기부터 실전 대회경기까지 여러 명의 데이터분석가들의 조언과 이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전략전술을 만들어내는 코치와 감독까지 매우 잘 조성된 트레이닝 시스템속에서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길러내고 있다.
그들이 과연 언제까지 한국의 e스포츠 선수들을 두려워하며 한국 e스포츠 팀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따라하기만 할 것이라 예상하는가. 이미 그들의 반격은 시작되었다.
지난 여름 블리자드에 근무하는 지인의 소개로 태국의 ‘kantana Group(칸타나 그룹)’이라는 미디어 기업에서 e스포츠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를 만나게 되었다. 태국엔 변변한 프로팀도 없으며 e스포츠 선수들을 육성하는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타나 그룹은 자회사인 방송국을 통해 ‘King of Gamer’라는 e스포츠와 예능이 결합된 형태의 프로그램을 대성공 시키는 사례를 만들어 냈다. 산업적으로 가능성과 규모를 예측할 수 있게 되자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붐업시킬 인력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e스포츠 선수 인프라 및 육성 시스템이 전무한 그들이 해결책으로 제안한 것이 한국의 e스포츠 교육전문가들을 만나서 교육 노하우를 전수 받는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잔뜩 기대가 부푼 눈빛의 그들과 마주한 필자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자질이 보이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훌륭한 연습실과 훌륭한 숙소를 제공하고 하루 12시간 이상 죽어라 연습시키면 된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선수들을 키워서는 안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
조금 눈을 돌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아이돌을 키워내는 방법론을 살펴보자. 아티스트를 인위적으로 키워낸다는 발상 자체가 아이러니 하지만 대한민국의 유명 연계기획사들은 지난 10년간 자신들만의 아티스트 육성방법을 끈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아티스트 육성시스템을 완성하였다.
그 결과로 BTS(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그룹은 전세계 pop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그들도 10년 전엔 지하 골방에서 연습생들을 모아 놓고 밤새도록 춤추고 노래하고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었다. 어떻게 성장하였고 어떻게 성공했는지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인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포츠에 유독 강세를 보인다. 양궁은 물론 사격과 같은 종목에서 전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며 세계 대회의 메달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들의 훈련방식은 과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분석해봐야 한다. e스포츠 역시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기반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현재 선수들의 전략전술에만 집중하고 있는 교육의 기본골격부터 바꾸어야 한다.
첫째,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기초체력을 연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e스포츠는 머리로 하는 것이니 체력훈련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다. 뇌과학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신체를 움직이는 체력훈련이 두뇌활동을 얼마나 정교하고 활발하게 만드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것이다.
실제로 LOL의 Faker(이상혁)나 베틀그라운드의 Evermore(구교민)와 같은 선수들은 경기전 체력 운동을 반드시 한다. 그래야 성적이 잘 나온다는 것을 이들은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전길남 전 카이스트 교수의 연구팀도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등산과 암벽등반을 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10대 중반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하는 e스포츠 선수들의 대부분이 경추와 요추 등에 심각한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손목을 매우 혹사시키는 e스포츠 선수들 중 선수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관절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에게 체계적인 근력운동과 기초 체력운동은 부상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다.
둘째, 바둑이나 체스와도 같은 브레인스포츠라 불리는 종목에서 활약중인 선수들을 살펴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냉정함을 유지하는 멘탈의 힘에 놀랄 때가 있다. 이는 양궁이나 사격과도 같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통 스포츠 선수한테도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들이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훈련하는 집중력 프로그램을 e스포츠 선수들의 훈련방식에 도입해야 한다. 뉴로 바이오피드백(neurofeedback) 그리고 뇌과학이 접목된 심리기술 프로그램 교육과 PST(Psychological Skills Training) 프로그램을 접목한 심리치료 교육은 타 종목에 비해 긴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이 많은 e스포츠 선수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근래 국내외에서 심심찮게 이슈가 되고 있는 e스포츠 선수들의 기초인성 및 소양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 단절되어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한 e스포츠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중의 하나가 인성교육이다.
이는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할 선수로서 갖추어야할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물론 협회나 IP를 갖고 있는 개발사에서 선수인성교육을 집체교육 형태로 일년에 한 두번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을 갖춰야한다.
셋째, 경험에 의존하는 전략/전술 훈련은 한계가 있다. 물론 훌륭한 선수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전통적이며 효과적인 훈련방법이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변화하고 진화한다.
특히 e스포츠는 데이터에 근간한 스포츠이다.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우는 전략/전술이 효과적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 e스포츠팀에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데이터분석가를 배치시켜 활용하는 팀이 없다. 심지어 아날로그 방식의 축구나 야구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모든 데이터가 선수훈련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는데 디지털 방식의 e스포츠에서 그렇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향후엔 빅데이터(Bigdata) 그리고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을 활용한 선수들의 경기데이터를 분석하여 좀 더 효과적인 훈련방법을 제시하고 선수 개개인에게 적합한 맞춤형 전략전술을 제시하지 못하는 팀은 도태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대한민국 e스포츠 산업은 이제 우수한 선수들에 기대기만 해서는 절대 안된다. 변화해야 한다. 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주나 감독 코치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위상을 치열한 도전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이며 전세계 e스포츠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최삼하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게임기획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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